빅데이터, 사생활 보호, 그리고 장애인에 대한 영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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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7 | 조회수 232 | 작성일 2023.07.05 |
미국의 "장애권 교육 및 옹호 기금"이라는 단체의 소속변호사 Silvia Yee가 빅데이터의 법률적인 측면을 살펴본 보고서를 요약하였습니다. 전문은 https://healthlaw.org/wp-content/uploads/2023/03/This-Data-Not-That-Data_Disability-Rights-Education-and-Defense-Fund_FINAL.pdf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대부분의 건강관련 행정기록물에는 장애여부를 자발적으로 밝힐 수 있는 칸이 없음. 따라서 이런 자료를 이용하여 보건의료의 적절성, 질, 형평성 등을 연구할 때 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은 제대로 수합되기 어려울 수 있음.
장애권 운동가들은 지난 수십년간 인구학적 조사, 각종 공중보건 및 의학연구에서 장애인들의 존재를 기억하고 포함시킬 것을 요구해 왔음.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건강 형평성을 위해서는 장애인들의 건강 정보 수집이 필수적이기 때문.
그러나 자발적으로 장애 사실을 밝히는 것과 빅데이터가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장애 사실을 유추해내는 것에는 차이가 있음.
미국의 경우 의료보험 이전 및 책무법 (Health Insurance Portability and Accountability Act; HIPAA)에 의해 의료공급자, 병원, 보험사, 고용주 등 의료보험과 의료 제공에 관련된 주체들은 환자가 자발적으로 제공한 정보라고 해도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없게 규정되어 있으나, 빅데이터를 수집하는 구글, 메타, 아마존 등 정보기술계의 대기업들, 사회관계망 서비스 제공자들, 건강관련 앱 제작자들은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음.
(물론, HIPAA의 규제를 받는 주체들도 제3자에게 제공만 안 한다 뿐이지 내부적으로 얼마든지 보유한 데이터를 분석하여 어느 환자에게 우선권을 주어야할지, 어디에 더 자원을 투자해야할지 등의 결정을 내릴 때 참고하고 있을 것임)
따라서 어떤 사람의 쇼핑 기록, “좋아요” 기록, 페이스북 자조 모임 가입 기록, 인터넷 검색어 기록 등을 수합하여 장애 여부와 종류를 특정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임. 이것이 현재에는 개인 맞춤형 광고를 보여주는 정도에 그친다고 하더라도 차후에 어떻게 오용될 지는 알 수 없음.
예를 들어 4천만 명이 넘는 이용자를 자랑하는 한 생리주기 기록용 앱은 임신중절을 범죄로 규정하는 주의 주민들에게는 매우 위험할 수 있음. 주정부에서 이 앱에 저장된 정보를 압수수색하거나 혹은 앱 제작자가 정보를 판다면 (이미 해당 회사에서 사용자들의 생리기간 정보나 임신시도 중이라는 정보를 페이스북에 팔았다는 것이 탐사보도를 통해 밝혀진 바 있음) 임신이 시작되었다가 끝났다는 것을 유추해낼 수도 있기 때문임. 어떤 사람들은 이에 대해 달력에 표시하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돌아가는 안전한 대안이 존재한다고 한 소리 하겠지만 읽고 쓰거나 보거나 움직이는 것에 제약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는 매우 무신경한 발언이라고 하겠음.
다른 예로, 집주인들을 위해 세입자에게 정신병력이 있는지, 혹은 장애를 가진 자녀와 함께 사는 부모인지 유추해내거나 구체적으로 유추해내지는 않더라도 낮은 점수를 매기는 “일종의” 신원조회 서비스를 상상해볼 수 있음.
통증을 기록하고, 나의 의료 기록을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빠르고 쉽게 공유하며, 해야 할 일의 알림을 설정해두고, 문자를 소리내어 읽어준다든지 혹은 소리를 문자로 바꾸어주는 앱을 사용하고, 휠체어로 다닐 수 있는 경로를 탐색하는 등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좀더 독립적이고 편리하게 살아갈 수 있게끔 정보기술이 도울 수도 있으나, 이러한 편리를 누리기 위해 사생활 침해를 용인해야한다면 이는 묵과할 수 없는 일임. 그렇다고 개개인에게 모든 회사의 정보 공유 정책과 기술을 일일이 확인하라는 것도 부당한 일임.
한편 상관관계를 섣불리 인과관계로 해석했다가는 취약한 사람들, 가장 대표적으로는 장애인에게 불이익이 갈 수 있음. 요양시설에 사는 장애인들을 예로 들자면, 심각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요양시설에 사는 이유가 반드시 그 쪽을 선호해서가 아닐 수도 있음. 당사자는 지역사회에 남아 살고 싶더라도 장애 친화적이고 가격도 적당한 주거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시설에 사는 비율이 높은 속사정이 있는지도 모름. 그러나 빅데이터가 특정한 장애를 요양시설과 연관 짓고 휠체어에 대해 검색하는 사람들에게는 요양시설 광고며 요양시설의 안전성을 위한 캠페인 등을 보여주기 시작한다면 장애인은 요양시설에 산다는 통념은 강화될 뿐임.
정보기술은 장애인에게 득이 될 수도 실이 될 수도 있음. 낭포성 섬유증의 예를 들면, 이 진단을 받은 사람들은 폐의 기능이 약화될 가능성이 높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님. 만약 장애 사실이나 진단명을 따로 기록해두지 않고 당장 보이는 폐활량이나 반응 속도에 기반하여 응급 환자를 분류한다면 낭포성 섬유증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예후 점수가 낮을 것. 코로나 팬데믹 때처럼 중화자실이 부족한 상황이 된다면, 이 점수는 생사를 가르는 이유가 될 수도 있음. 그러나 만약 이 사람의 병력, 평소 건강 상태, 진료시의 유의사항 등이 제대로 반영된 전자의무기록이 적시에 제공되거나 혹은 이러한 정보가 제대로 반영된, 빅데이터 기반 의사결정보조도구를 의료진에게 제공할 수 있다면 오히려 낭포성 섬유증 환자에 대한 의료진의 선입견에 기대지 않고 더 적절한 치료를 제공받을 수도 있을 것. |